금년 SGF에서 소식을 알린 캡콤의 '프래그마타(Pragmata)'는 굉장이 오랜 시간 '기대작'으로만 남아 있던 작품이다. 최초 공개가 무려 2020년. 근미래의 달 기지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건 알려졌지만, 그 외 많은 부분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으며, 무려 그 상태로 3년이 지나서야 영상을 통해 게임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밝혔다.

그리고 2년이 더 지나, 2025년이 되어서야 '프래그마타'는 드디어 본모습을 조금이나마 드러냈다.

트레일러를 통해 알려진 '프래그마타'는 달 기지에서 부상당을 입은 채 가까스로 생존한 주인공 '휴 윌리엄스'와 안드로이드 소녀인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휴가 전투와 움직임을 맡는다면, 다이애나는 해킹을 통해 공격을 보조하는 형태. 휴가 어째서 부상을 입은 채 달 기지에서 깨어났는지, 그리고 다이애나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 모든 일의 배경에 어떤 사건이 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SGF 2025과 함께 진행된 플레이데이에서, 짧은 시연을 통해 프래그마타가 추구하는 플레이가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10분 남짓한 플레이였지만, 프래그마타의 첫 인상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프래그마타의 독특한 재미 공식
'긴박의 극복을 통한 카타르시스'에 대하여


시연은 트레일러와 같이 다이애나가 휴를 발견하고, 그를 깨우면서 시작된다. 정신을 차리자 마자 나타난 로봇에 대응해 휴는 다이애나를 보호하려 하지만, 다이애나는 마치 도토리를 발견한 다람쥐처럼 계속 앞으로 나서려 하고, 끝내 해킹 능력을 통해 휴를 보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첫 전투를 치른다.

▲ 두 주인공, '휴'와 '다이애나'

이후, 프래그마타의 모든 전투는 휴의 사격과 움직임, 그리고 다이애나의 해킹이라는 투 트랙을 활용하는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게임 내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적은 일반적으로 휴의 사격에 별 피해를 입지 않는다. 다만, 다이애나가 적을 해킹하면 피해를 입음과 동시에 방어구가 해체되면서 사격이 유의미한 피해를 주게 된다. 때문에, 게이머는 적을 만날 때마다 적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이애나로 해킹을 시도하고, 해킹을 해냄과 동시에 휴를 조작해 적을 쳐부숴야 한다.

▲ 뭐든 같이 해야 하는 우주판 수난이대

이런 특징적인 프래그마타의 전투 방식은 분석적으로 볼 경우 굉장히 흥미로운 구조를 띄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쓰이는 연출 중 촉박한 시간 내에 가까스로 사건을 해결하는 구도가 있다. 이를테면 1초를 남겨 두고 폭탄을 해체하거나, 떨어지는 칼날을 간발의 차로 피해 머리카락 한 올만 잘리는 등의 장면 등이 그렇다.

이런 '긴박한'순간에 대한 극적인 극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주는데, 프래그마타의 전투가 이렇듯 긴박한 상황의 극복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이렇게 생긴 로봇 질럿들이 계속 위기를 준다

이를 보조하는 요소들이 적과 전투 구조의 디자인인데, 프래그마타의 적들은 상당히 느릿하지만, 꾸준히 공격을 시도한다. 인간형 적은 느릿느릿 다가오고, 원거리 드론 형태의 적은 뻔히 보이는 조준점을 통해 곧 공격을 가할 것을 알린다.

이렇게 '곧 공격이 가해질 것'을 시각적으로 알려준 이후, 다이애나를 통한 해킹 타임어택이 시작된다. 휴에서 다이애나로 바뀌는 조적의 전환은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불편함 없이 이뤄지며, 게이머는 공격을 시도하는 적이 실제로 공격을 가하기 전에 해킹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해킹을 실패할 경우, 공격을 당하거나 소득 없이 다시 거리를 벌린 후 다시 해킹을 시도해야 하는 형태다.

▲ 적을 인지하는 순간 타임어택이 시작된다

이 과정을 모두 성공할 경우 적이 공격하기 전에 해킹을 해내 방어력을 낮춘 후 적의 면전에 산탄총(게임 내에선 충격파 총이지만 그냥 산탄총이다)을 쏴버릴 수 있는데, 그 쾌감이 상당하다. 대사가 없음에도 마치 다이애나와 휴가 서로 대화하며 상황을 해결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해야 할까? 실제로 이 과정이 그리 어렵지는 않기 때문에 게이머가 느끼는 압박의 정도는 높지 않지만, 성공할 때의 쾌감은 낮은 압박에 비해 높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그냥 매 전투가 굉장히 재미있다.

이를 위해, 프래그마타의 전투는 적이 한 번에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시연 버전은 길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시연 과정 중 한 번에 셋 이상의 적이 등장했던 적은 없었으며, 한 전투에서 셋 이상의 적을 처리한다 해도 순차적으로 등장해 해킹과 전투를 벌일 충분한 시간을 준다. 보스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체험할 수 있었다면 보다 상세하게 이 게임이 추구하는 재미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보스전 앞에서 시연 구간이 딱 끝나버렸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 보스전 해보고 싶었는데, 안 시켜주고 스크린샷만 줬다...


다이애나와 휴, 두 명의 주인공
'데드 스페이스'에는 없는 동료라는 의지처


프래그마타의 주인공은 둘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우주 비행복을 입은 주인공인 '휴', 그리고 안드로이드인 '다이애나'인데, 이렇게 주인공과 항상 함께하는 조연이 존재하거나, 아예 주인공이 두 명인 구도는 액션 게임에서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는 구도다. 먼 옛날 '이코'부터 시작해 크레토스와 미미르, 혹은 아트레우스, 혹은 같이 공개된 '귀무자: 검의 길' 속 건틀릿 레이디처럼 말이다.

▲ 주인공이 둘인 것도 이유가 있다

이러한 인물 배치는 게임의 심적 압박이나 피로도를 낮추는데 상당히 큰 역할을 한다. 앞서 언급한 '갓 오브 워'를 예로 들면, 친구 하나 없이 괴성만 지르면서 신들을 토막치던 과거의 크레토스에 비해 미미르와 만담을 나누는 크레토스를 플레이하는게 훨씬 마음이 편하고, 오래 플레이할 수 있다.

'프래그마타'또한 비슷한데, 게임의 구도나 흐름 자체는 '데드 스페이스'와 꽤 유사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점, 로우 템포의 슈팅 액션이라는 것, 그리고 시점이나 적들의 움직임도 꽤 비슷한 편이다. 하지만, 다이애나의 존재로 인해 데드 스페이스에 비하면 플레이어가 받는 압력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다이애나가 귀여운 것도 있지만, 두 주인공은 꾸준히 현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전투 과정에서도 협력하며, 스테이지 상의 기믹이나 퍼즐을 풀 때도 함께 해결해나가기 때문이다.

▲ 다이애나특: 귀여움

덕분에 시연 과정에서 느끼는 '게임 플레이의 심적 압력'은 굉장히 낮았으며, 오랜 시간 별 문제 없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날 진행한 '바이오 하자드 레퀴엠'은 시작과 동시에 취재고 뭐고 집에 가고 싶었는데, 극과 극이 따로 없다.

정리하면, '프래그마타'는 설계된 긴박함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특징적인 카타르시스를 주 무기로 장착한,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의 배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의문스러운 정황만 가득한 만큼 스토리 드리븐 성향도 일부 띄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케미와 전투 자체의 재미, 그리고 이 재미를 끌어올리기 위한 보이지 않는 설계가 잘 맞아떨어진다.

물론, 지금의 감상만으로 프래그마타를 단정지을 수는 없다. 앞서 공개된 짧은 티저처럼 2026년에 출시가 이뤄진다면, 그 즈음이 되어서야 제대로 프래그마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고, 이번 시연에서 확인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첫인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첫인상'은 상당히 인상깊었다. 큰 문제 없이 게임이 완성된다 가정한다면, 꽤나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 만큼 말이다.